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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슬픔

by faramita 2025. 3. 16.

 

쉽게 쓴 자기심리학_최영민/학지사

 

p103

"지고의 대상에 리비도 부착이 집중될 때, 죽음을 허용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자기애적 관심을 무시할 수 있는 사태를 얻을 수 있다.........................................유머와 우주적 자기애는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할 수 있게 해 준다. 초심리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대상에 광적인 리비도 부착을 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리비도를 탈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애적 리비도를 재배치하고 변형시킴으로써 자기에 대한 리비도를 탈부착한다. 극단적인 대상 리비도 부착의 상태에서는 자아의 기능 범위가 위축되지만, 유머나 우주적 리비도 상태에서는 자아의 활동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자유롭다. 진정한 자기에 대한 리비도 탈부착은 온전하고 잘 기능하는 자아에 의해 서서히 이뤄진다. 그리고 소중한 자기애적 자기로부터 개인을 초월하는 이상이나 가치에 리비도 부착이 옮겨감에 따라 슬픔이 수반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심오한 유머나 우주적 자기애는 과대감이나 고양된 감정을 보이는 대신, 슬픈 우울감이 뒤섞인 조용한 내적 승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흔히 깨달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유추한다. 그건 행복이 쾌락감에 있다는 좁은 시각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대해 단계별로 설명하는데 깨달음의 황홀경은 곧 사라지고 고요한 상태가 찾아와야 한다고 한다.

 

쉽게 쓰는 자기심리학은 Kohut의 심리학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Kohut의 책이 번역되어 있지만 번역 자체가 정갈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 책은 저자가 이해한 자기심리학과 정신분석 전반을 교차하며 이해하기 싶게 설명하고 있다.

 

리비도라는 욕동이다. 우리는 욕동에 의해 사고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은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대상에 부착된다.

초기 유아기에는 부모에게 그 이후에는 사회적인 대상에게 부착된다. 그리고 뒤에 나온 초월심리학에서는 그것이 좀 더 거대한 일체감을 향하게 된다. 이러한 확장에 있어 리비도의 흐름을 방향짓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이라는 상황이다. 우리가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나"라고 믿고 만들어 놓은 성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언젠가는 당장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이라는 화두 앞에 내던져지게 된다.

이 때 그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에 어떤 이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전능한, 영원한 대상에 유한의 "나"를 던져버린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는 영원한 내세를 빌미로, 그곳에서의 부귀영화를 주장하고, 교주는 자신이 불멸의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허상의 영웅의 그림자 아래로, 죽음의 불길을 피해 달아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죽음"을 살아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 기제를 "유머와 우주적 자기애"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유쾌한 장례식 장면이 떠오른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고인의 관 안에는 생전에 녹음해 놓은 소리가 울러 나온다. "여기 사람이 있어."라고 하며 관을 두드리는 녹음이였다. 그의 목소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건내었고 사람들은 웃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녹음한 것이다. 그는 살아서 죽음을 받아들였고 그런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유쾌한 방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리비도의 부착이 개인을 초월하는 이상이나 가치로 이동하면서 황홀경이 아니라 오히려 슬픔이 일어난다.

책에서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설명만한다. 아마 작은 자기, 자아가 그러한 부착과정에서의 소멸, 또는 일차적 자기애 부착을 놓으며 대상상실의 설명의 아닐까?

 

우리는 깨달음을 어렵게 생각하고 또한 행복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은 자아와 자기라는 자기 개념의 놓아버림이다. 다양한 기억과 이념과 분별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놓아버림은 가벼워지는 과정이지만 집착하는 마음의 크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자칫 공허가 자리잡거나 허무가 자리잡기도 한다.

내가 집착했슴을 인정하고, 집착했던 것 만큼 놓아버릴 때 놓아버리는 슬픔과 애도를 충분히 할 때 공허와 허무가 아닌 지혜로 열매 맺을 것이다.